[현대사진관] 역사가 살아있는 광주의 금싸라기 땅 ‘광주 광천동’ - 현대건설 매거진H

[현대사진관] 역사가 살아있는 광주의 금싸라기 땅 ‘광주 광천동’

‘현대사진관’이 추억으로 남을 우리 동네의 지금을 기록해드립니다.

광주광역시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버스터미널과 가장 넓은 도로가 있다. 바로 광천동에 있는 유스퀘어(광주종합버스터미널)와 그 앞에 있는 무진대로이다. 시외로 드나드는 차량과 사람들, 시내로 이동하는 차량으로 항상 북적북적한 광천동은 그만큼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지만 몇 발자국만 안으로 들어가면 조용한 동네가 나타난다.​ 광주광역시의 중심에 드넓게 펼쳐져 오랜 기간 새로운 주거지를 기다리고 있는 광천동 재개발구역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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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천, 광천동(光川洞)

본래 예전의 광천동 땅은 광주천과 신안천이 만나는 지점에 만들어진 삼각주였다. 퇴적물이 쌓여져 생긴 버려진 땅이었지만. 자연적으로 생긴 제방에 인공적으로 둑을 쌓아 범람을 막으면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변했다.

광주천에서 주(州)‘를 빼고 ‘빛나는 물’이라는 이름을 얻은 광천동에는 유스퀘어 광주종합버스터미널과 유스퀘어문화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 옆에는 광주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까지 있어 쇼핑과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반면에, 무진대로 건너 광천동사무소가 있는 쪽은 분위기가 다르다. 오래전 이곳은 송원학원의 산하 학교들이 위치한 곳이기도 했지만 2003년 유치원,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가 차례로 이전하였고 학교들이 이전한 부지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광천동 재개발 사업지는 이 아파트 단지와 붙어있는데 대규모 아파트 단지 옆 조용한 사업지 내부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어 더욱 적막해보였다.

도시의 뒷골목에 자리잡은 낮은 건물들은 십 년이 넘도록 새로운 주거지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안에서는 오랜 시간 기다림에 익숙해진 쓸쓸함과 새로운 미래를 위한 기대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광천동을 돌아다니며 주변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져 놀랐지만 더욱 흥미롭게 광천동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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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동의 현재 모습과 주택재개발

광천동 주택재개발정비 사업은 면적 42만 5,984㎡를 대상으로 지하 2층 지상 최고 33층으로 5,611세대 및 부대시설이 들어설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 재개발 과정에서 지금 있는 건물들이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광천동 가운데에 있는 효광 초등학교와 광천동 성당은 재개발 이후에도 그대로 만날 수 있다.

광천동을 돌아볼 때 남아있을 장소를 중심으로 그 주위를 돌아보기로 했는데 효광 초등학교 앞 느티나무 지역아동센터에서 시작해 광천 3길 따라 이어지는 벽화들이 인상 깊었다.

광천 3길 주변으로는 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광천동이 공단 지역일 때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당시 이 골목들은 이웃과 교류하고 애환을 나누던 사람 냄새 나는 추억의 장소였을 것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가 썰렁할 수 있었던 골목이었지만 벽화들로 인해 밝고 화사한 분위기로 지나가는 시민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골목에 그려진 벽화들은 서구 자원봉사센터와 울타리 재능봉사단 그리고 광천동 주민센터, 명진 고등학생들의 협력으로 2018년 봄에 그렸다고 써져 있었다. 비록 몇 년 내로 사라질 장면들이지만 그동안 광천동을 밝게 해준 벽화들을 보며 그들의 노력이 보람찼음을 말해주고 싶다.


[3]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시작이 된 광천동

오래된 건물들이 있는 광천동에는 그만큼 역사적인 현장들이 남아있다. 1969년에 지어진 광주 최초의 연립아파트 ‘광천 시민아파트’에 방문해보았다. 광주시는 당시 판잣집이 가득했던 광천동의 주거 환경개선 목적으로 3층 규모의 총 184세대를 제공하기 위하여 이 건물을 건립했다. 하지만 이름만 아파트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아파트랑은 다르다.

주민들은 각 층 입구의 공동 화장실과 세탁장에서 세면·빨래·쌀 씻는 것을 모두 해결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2000년대 들어서는 건물이 낡아감에 따라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 현재는 많은 곳들이 비어 있었다. 현관문도 없고 복도에는 전등이 없어서 대낮임에도 어두컴컴했다. 건물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고양이만이 잠깐 눈인사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곳은 단순히 오래된 연립주택이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이 남아있는 사적지이기도 하다. 민주화운동의 열사들이 시민 아파트에 세 들어 살고 있었고 5.18 당시 광주 참상을 알린 <투사회보>가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가 된<임을 위한 행진곡> 역시 시민 아파트에서 일어난 사연을 배경으로 해 지어졌다.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파트이기 때문에 철거될 위기에 처했던 시민 아파트지만 이 아파트를 보존하자는 의견들도 많이 나왔다고 한다. 재개발과 더불어 적절한 모습의 시민 아파트의 변신이 기대가 된다.

광천 시민아파트 옆에 있는 ‘광천동 성당’에도 들어가 보았다. 친절한 수녀님에게 허락을 맡아 성당 내부를 구경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비쳐 반사되는 빛들이 아름다웠다.

이 곳엔 광주·전남 최초의 노동야학인 ‘들불야학’ 옛 터를 볼 수 있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적 27호로 지정된 기념비가 있는 장소가 그곳이었지만 현재는 일부 벽체만 남아있었다. 들불야학으로 쓰인 벽돌 건물은 철거 당시에는 워낙 건물이 노후해서 창고 정도로만 쓰였다곤 하지만 2006년에 성당 측과 협의를 해 이렇게라도 들불야학의 흔적을 남겨 두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광천동 재개발이 완료되면 이 지역은 기존의 터미널, 쇼핑 및 문화시설에다가 대규모 주거시설과 주상복합시설 등이 더해져 광주의 교통·문화·주거의 중심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보다 깔끔하고 멋진 동네로 변할 광천동이 기대되면서도 과거의 의미 있는 사적지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의미 깊은 동네가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