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진관] 한 폭의 그림 같은 꽃길에 둘러싸인 ‘반포주공1단지 1·2·4 주구’

‘현대사진관’이 추억으로 남을 우리 동네의 지금을 기록해드립니다.

반포주공1단지는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대한주택공사에서 건설한 최초의 대단지 아파트이다. 강남 아파트 시대를 연 반포주공1단지가 재건축 사업을 통해 50여 년 만에 한강변 스카이라인을 새롭게 구성하며 일대의 유일무이한 랜드마크로 탈바꿈한다고 한다. 현재는 이주 절차를 마무리 해 주민들도 떠나고 철거만 남은 반포주공아파트. 인기척은 없지만, 따스한 봄꽃이 나를 반겨주는 듯 했던 반포주공1단지를 기록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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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주공1단지로 들어가며

반포주공1단지는 대한주택공사가 허허벌판이었던 반포동에 1973년에 ‘남서울 아파트’라는 이름으로 공급한 아파트 단지다. 지어질 당시 국내 아파트 역사상 가장 대규모 단지여서 그런지 단지로 걸어갈 수 있는 지하철역이 세 개나 있다. 동작역, 구반포역, 신반포역이 그렇다. 그중에 반포주공1단지를 감싸고 흐르고 있는 반포천이 있는 동작역으로 나와 답사를 시작했다.

예전에는 동작역 1번 출구에서 반포주공1단지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반포주공1단지에 살던 주민들의 이주가 완료되어 단지 출입문이 막혀있다. 그래서 반포천을 따라서 지어진 산책길 ‘허밍웨이 길(Humming Way)’을 따라 걸어본다. 허밍웨이 길은 ‘반포천 제방길 Redesign Project’에 따라 2009년에 탄생했다. 벚꽃과 연두색으로 가득한 산책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허밍(콧노래)’을 하고 싶어진다. 콧노래를 시각화하여 음표와 오선 형태로 디자인된 울타리도 볼 수 있었다.

500m 정도를 걷고 나면 반포본동주민센터와 반포주공1단지의 1동이 있는 이수교차로에 다다른다. 그리고 신반포로를 따라서 가로형 상가가 펼쳐져 있다. 단층에서 3층까지 이뤄진 가로형 상가는 없는 것 빼고 다 있어 반포주공1단지의 주민들에게 여러 편의 사항을 제공해왔을 것이다.

이런 가로형 상가는 길을 걷는 시민에게 흥미를 느끼게 한다. 수시로 매장이 바뀌면서 볼거리도 바뀌니 어떤 매장이 있나 걷다 보면 어느덧 단지 끝으로 지나간 느낌이다. 한때 이 상가들에서 맛집들과 학원들로 많은 사람들이 붐볐겠지만, 지금은 공실로 닫혀 있었다.

반포주공1단지는 신반포로를 기준으로 북쪽에 1·2·4주구와 남쪽 3주구로 나누어져 있다. 1단지에 살았던 주민들의 이주가 끝나고 철거를 기다리고 있는 1·2·4주구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다른 입구가 막혀 있어 반포주공1단지 관리사무소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반포아파트 관리소’라는 글자 간판부터 외관과 내부 디자인 모두 70년대에 지어진 중후함이 느껴져서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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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담겨있는 반포주공1단지

반포주공1단지 내부에는 정말 예쁜 봄꽃들이 펼쳐져 있었다. 벚꽃에서부터 목련, 개나리, 동백꽃으로 보이는 빨간 꽃까지 다양한 식물들과 함께 공존하고 있는 반포주공1단지의 모습은 앞으로 다시 태어날 모습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정말 아름다웠다.

이곳을 작년 가을에도 다녀왔었다. 그때는 단지 안에 있는 나무들이 자신만의 단풍을 입으며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단지 가운데로는 노랗게 물들인 은행나무가 일자로 서있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반포주공1단지는 계절마다 전해주는 색감이 달라 주민들은 사계절을 더욱 가까이서 느끼며 살아왔겠지.

가을엔 노랗게 물들었던 나무들이 이제는 봄을 맞이하여 단장을 했다. 반포주공1단지를 멀리서 보면 아파트보다 높은 나무들이 보인다. 아파트 준공 초기에는 아주 작았던 나무가 시간이 흘러 단지와 함께 커버린 것이다.

단지 내부에는 건물 사이의 공간에 뜰을 두는 커다란 중정형 공원들이 있고, 그곳마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놀 수 있는 어린이 놀이터들도 있었다. 그 옆에는 커다란 버드나무가 연녹색 잎을 자랑하고 있어 반포주공1단지의 운치를 더해주었다.

반포주공1단지 북쪽으로는 한강이 있다. 걸어서 한강변에 갈 수 있는 아파트 단지라니! 비록 그 사이에는 올림픽대로가 있지만, 높게 솟은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가로수로 늘어서 있어 대로변과는 완전히 분리된 다른 공간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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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적 특징으로 본 반포주공1단지 

반포주공1단지는 건축학적으로도, 도시계획적으로도 중요한 단지라 여러 논문에도 쓰일 만큼 연구와 전문적인 측정이 되어있다. 자세한 내용을 모두 이 글에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사진을 찍으며 보이는 특징들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반포주공1단지의 아파트들은 이후 지어지는 ‘아파트 문화’의 원형 모델이 되었다. 아파트 주동이 남쪽으로 일자·병렬 형태로 정렬되어 있는데, 내가 잠깐 살았던 아파트도 이런 5층 높이의 주공 아파트였다.  단지 모습이 비슷해서 그런지 내겐 반포주공1단지가 더욱 정겨웠다.

그런데 반포주공1단지에는 99개동이나 되는 아파트 중에 6층으로 된 아파트가 4개 있다. 특히 95동과 96동은 30평대 2가구가 내부에서 연결되어 있는 60평대 복층 구조다. 이렇게 아파트 거주 주 수요층을 중산층으로 잡고 내부 설계를 계획한 점은 ‘라디에이터’ 난방을 적용한 점과 다른 아파트에서는 공동화장실을 사용했던 시절에 반포주공1단지에는 부부욕실이 따로 만들어진 점 등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반포주공1단지는 지금 보면 당연하지만, 단지를 지으면서 전선들이 지하로 연결되는 지중화 작업을 했다. 덕분에 단지 옆에 있는 서래 마을과 비교를 하더라도 건물 옆에 전선들이 없어 도로가 깔끔해 보인다.

‘대한주택공사’가 있던 시절에 쓰였던 로고들도 한 단지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3주구에는 집 모양과 아치 모양의 문이 그려져 있는 로고를 주로 볼 수 있었는데, 이는 1978년부터 2003년까지 사용했던 로고이다. Housing의 ‘H’를 모티브로 제작하여 그려진 로고는 1·2·4 주구에서 많이 보였다. 이 로고는 2009년 10월 토공과 주공이 합쳐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나오기 전까지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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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주공1단지를 떠나면서

반포주공1단지를 둘러보면 경비초소를 많이 볼 수 있었다. 50년 된 아파트 치고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는 모습은 많은 경비원 아저씨들의 노고 덕분이었을 것 같다. 아직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시는 경비원 아저씨를 보며 어딘가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옥상에 올라가 보았다. 한강을 바라보며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한강을 바라보며 쉬었을 주민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재건축이 되어 더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한강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아마 이번이 반포주공1단지의 마지막 봄일 것이다. 반포주공1단지의 다채로운 봄꽃들을 구경할 수 있어서, 그리고 마지막 봄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다. 단지 가운데 도로에 있는 가로등에만 불이 켜진 반포주공1단지의 밤을 바라보며 살며시 작별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본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라 불리는 곳인 만큼, 사업이 완료되면 일대가 몰라보게 바뀔 모습이 기대된다. 훗날 이 곳에 거주했던 분들이 반포주공1단지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