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름다운 땅에도 약점은 있다. 그 해결책을 찾는다” – 이상민 주택설계팀장 인터뷰

*본 콘텐츠는 2021년 8월 14일 조선비즈에 게재된 [건설人열전]① “정말 아름다운 땅에도 약점은 있다. 그 해결책을 찾는다” 이상민 현대건설 주택설계팀장 인터뷰 기사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며, 모든 저작권은 해당 언론사 측에 귀속되어 있습니다.

조선비즈 허지윤 기자 작성

[편집자주] 건설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해외 산업역군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열사의 땅에서 길을 내고 집을 짓던 근로자들의 땀방울은 외화로 돌아와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1세기 건설회사에는 종합예술을 방불케할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한다. 공학과 과학, 경제, 예술, 인문학까지 어우러져야 쓰임새 좋은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만나봤다. 아파트를 비롯해 초고층 건축물과 거대한 교량까지, 과연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를 들어봤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옛 삼호가든맨션 3차)의 현장을 둘러보던 당시 처음 든 생각은 ‘참 아름다운 땅이 있구나’였어요. 하지만 약점은 있었습니다.”

이상민(사진) 현대건설 주택사업본부 주택설계팀장은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말을 했다. 도대체 이 팀장의 눈엔 어떤 땅이 아름답게 보이는 걸까. 그리고 땅에 약점이 있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그는 건축사이면서 시공기술사, 부동산개발전문가다. 20년 넘는 기간 동안 상품개발, 설계, 디자인 업무를 두루 수행했다. 그의 손을 거쳐간 아파트 현장 중에는 이름을 알만한 곳도 많았다. ‘디에이치 라클라스’와 ‘디에이치 포레센트’ 등 고급 아파트가 즐비한 강남권 현장만 꼽아도 열 손가락은 거뜬히 넘길 정도였다.

이상민 현대건설 주택사업본부 주택설계팀장

이 팀장의 설명은 이랬다. “네모 반듯한 땅일수록 ‘예쁘다’고 표현합니다. 라클라스가 들어서는 땅은 직사각형 모양에 가까웠어요. 이런 부지는 찾기 어렵죠.”

하지만 대지의 폭이 좁고 긴 형태여서 출입 도로에서 보이는 단지 모습이 자칫 빈약하게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것이 바로 약점이다. 그래서 넣은 것이 비정형 외관과 비정형 문주였다.

3차원(3D) 기법을 활용해 설계한 문주는 16개의 대형 철제에 약 2400여개 스테인리스 스틸 판넬을 이어 붙여 제작했다. 야간에는 문주에 1만2209개의 조명이 불을 밝혀 단지의 첫 인상이 된다. 출입구에도 힘을 줬다. 한강의 물결을 상징하는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진 입면 디자인으로 주변 경관과 조화를 만들었다.

“‘고작 문 하나에 신경을 써봤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파트 하나를 만들면서도 수백가지 고민을 해요. 그게 그 단지의 품격을 나타냅니다.”

2021년 6월 첫 입주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옛 삼호가든맨션 3차 아파트 재건축)’ 단지 특화 문주. /현대건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옛 삼호가든맨션 3차 아파트 재건축)’ 스카이 커뮤니티. / 현대건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옛 삼호가든맨션 3차 아파트 재건축)’ 단지 측벽 디자인. / 현대건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옛 삼호가든맨션 3차 아파트 재건축)’ 단지 조경. / 현대건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옛 삼호가든맨션 3차 아파트 재건축)’ 단지 예술정원. / 현대건설

우리는 아파트의 품격을 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1970~1980년대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 강남권에 대량 공급을 전제로 지어진 ‘복도식 아파트’는 재건축을 거치며 이제 고급화·차별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똑같은 모양의 성냥갑 아파트 시대가 저물었다는 것이다.

그는 “리조트 같은 아파트, 호텔 같은 아파트가 선호되면서 외관, 커뮤니티, 조경의 수준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면서 “각 가구가 향유하는 조망, 향(向), 일조 등을 두루 따져 기본 설계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일종의 의무이기도 하다. 이런 요인들이 어우러져 집값의 우열을 가리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조망’이 새로운 집값 결정 요인으로 편입됐고, 과거보다 이것에 대한 입주민의 요구도 커졌다고 했다. 그래서 최근 아파트단지마다 고심해서 넣는 것이 ‘스카이라운지’다. 공동주택의 한계로 집에서 조망권을 즐길 수 없는 가구가 나올 수 밖에 없다면 스카이라운지를 만들어 삶의 일부에 조망권을 느낄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선보인 ‘디에이치 아너힐즈’의 스카이라운지가 대표적인 예다. 이 아파트 30층에는 288.3㎡ 규모의 스카이라운지가 있다. 도서관과 카페도 넣었다. 아이와 어른이 두루 모여 시간을 보내면서 대모산 풍경과 강남 전경을 파노라마 뷰로 감상할 수 있다. 그는 “스카이라운지 유무가 고급 아파트의 기준 중 하나가 된 것은 조망을 공유할 권리가 재산 상의 가치로 계산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 그의 고민은 다음 세대의 아파트다. 이 팀장은 “미래 아파트 설계 트렌드의 핵심 키워드는 ‘초연결’, ‘공간의 맞춤화·개인화’, ‘기술의 융복합’이 될 수 밖에 없고, 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갈 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했다. 앞으로 그의 손을 거쳐갈 아파트 등 사업장만 100곳이 넘게 남아있다고 했다.

― 주택설계팀의 요즘 화두는 무엇인가

“‘5년, 10년 뒤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미래 주택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다. 사회경제적 변화 뿐 아니라 기후 변화 등 각종 트렌드를 예상해 상품에 더 빠르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한다.”

― 아파트 단지 설계 트렌드는 어떻게 변화해왔나

“대한민국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가 바로 현대건설에서 지은 마포아파트(1964년)다. 처음에는 ‘이게 적합한 주거유형이냐’고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서구에서 들어온 초기 아파트는 대량 공급을 전제로 한 복도식 아파트였다. 당연히 맞통풍이란 개념도 있을 리 만무했다. 한국 고유의 남향 선호를 설계에 담거나 온돌 난방 적용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 것이 점차 한국화됐다. 서울 마포, 반포, 압구정, 목동, 경기 분당이나 일산신도시 등 시대에 따라 아파트 설계는 점차 발전했다. 처음엔 공급자 위주였는지 몰라도 점점 도시환경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입주민들의 눈높이도 높아져 리조트 같은 아파트, 호텔 같은 아파트를 선호하게 되면서 외관, 커뮤니티, 조경의 수준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특히 환경 이슈에 민감해지는 추세다. 그만큼 사회 환경과 자연환경의 변동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다. 첨단 기술을 탑재한 주거 상품과 함께 온난화, 미세먼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바이러스 전파 등 모든 이슈에 대응하는 주거시설로 발전하고 있다.”

― 설계는 주거의 질 뿐만 아니라 집값을 좌우하는 주요 요소다.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첫째는 입지와 환경이다. 아파트의 입지 및 환경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조망, 향, 인근 자연 요소를 단지내·외부로 확대시켜 입주민이 누릴 수 있는 입지 환경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둘째는 미래 트렌드다. 주택 설계는 시간을 앞서 가야 하는 일이다. 건축은 설계부터 시공, 입주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사회 변화와 환경 변화의 트렌드를 예측해야 한다. 또 입주시점에도 기능적 ·디자인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 첨단기술, 입주민의 편의성 및 친환경 눈높이에도 맞춰야 한다.

주택설계의 핵심은 주거 기능 가치를 최적화·최대화하는 것이다. 통상 설계는 거시에서 시작해서 상세한 설계로 진행된다. 하지만 주택 설계는 초기부터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을 동시에 고려한다.

아파트 단지 전체 환경 뿐 아니라 각 주택, 가구의 환경을 모두 고려해 최대한의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도 활용한다. 지형, 조망, 일조량, 건축 법규 등을 분석해 최적의 아파트 배치 설계안을 연구·도출하고 있다.”

― 최근 지은 새 아파트가 과거의 아파트와 다른 점들을 꼽자면

“모든 입주민이 두루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스카이라운지’는 과거 아파트에 없던 요소다. 공동주택의 한계로 일부 가구는 집 안에서 남산, 한강 등 조망을 누릴 수 없으니 스카이라운지를 만들어 단지 입주민 모두 조망권을 갖게 해주자는 것이다.

옥상 활용도 마찬가지다. 과거 공동주택들은 옥상을 활용할 일이 없었지만, 이제는 옥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연구와 시도들이 늘고 있다. 옥상부 건축 벽체를 활용해 영화 상영, 스포츠 응원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과 오픈파티를 할 수 있는 스카이가든을 조성하는 식이다. ‘디에이치 라클라스’와 ‘디에이치 포레센트’ 등에 적용됐다.”

― 오래된 기존 아파트 매수를 계획 중인 수요자도 많다. 좋은 단지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나

“안전이 최우선이니 스프링클러 등 소방설비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축 아파트 중에서도 설립연도에 따라 강화된 법이 적용된 단지와 비(非)적용 단지가 나뉜다.

지은 지 약 10여년 된 아파트 중에는 초기 형태지만 커뮤니티시설이 적용된 단지들이 있다. 단지 내 커뮤니티시설과 자녀돌봄시설 등이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에너지 효율 면에서 창호의 성능과 기능도 중요하다. 에너지 소비량, 관리비도 함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수납력(수납공간)과 함께 향(向)도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과거에는 남향 선호도가 지금보다 컸는데 요즘은 조망 선호도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남향이 아니더라도 조망 좋은 집을 선호하는 편이 됐다.”

― ‘아파트 브랜드’와 ‘특화 설계’가 점점 강조되고 있는 분위기다.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2015년에 디에이치(THE H)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브랜드는 같아도 단지마다 각각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일반적인 브랜드 아파트는 각 브랜드별 표준 디자인을 개발해 적용한다. 하지만 THE H는 희소성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아파트의 입지환경, 상징성, 특수성, 조합원들의 요구를 조사해 단지별로 특장점을 담은 단지를 디자인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아무래도 외관이나 인테리어 디자인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된다.

예를 들어 디에이치 최초 단지인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는 좋은 입지 여건을 가졌다. 처음 현장을 둘러볼 때 ‘참 아름다운 땅이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대지 형상이 폭이 좁고 긴 형상이라서 진입 도로에서 보여지는 단지는 너무나 좁아 보였다. 디에이치 단지의 존재감을 어떻게 외부로 표현할지 고민하다가 외관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비정형 외관, 비정형 문주,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스카이 커뮤니티를 적용하게 됐다.”

2021년 1월 첫 입주한 서울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 포레센트(옛 일원 대우아파트 재건축) 단지 옥상 녹화 공간. / 현대건설
서울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 포레센트(옛 일원 대우아파트 재건축) 단지 옥상 시네마. / 현대건설
서울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 포레센트(옛 일원 대우아파트 재건축) 단지 옥상 녹화. / 현대건설
서울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 포레센트(옛 일원 대우아파트 재건축) 단지 조. / 현대건설
서울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 포레센트(옛 일원 대우아파트 재건축) 단지 측벽 디자인. / 현대건설
서울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 포레센트(옛 일원 대우아파트 재건축) 단지 특화 문주. / 현대건설
2019년 8월 첫 입주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개포주공아파트 3단지 재건축) 단지 스카이라운지. / 현대건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개포주공아파트 3단지 재건축) 단지 스카이라운지. / 현대건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개포주공아파트 3단지 재건축) 단지 조경. / 현대건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개포주공아파트 3단지 재건축) 단지 조경. / 현대건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개포주공아파트 3단지 재건축) 단지 특화 문주. / 현대건설

― 미래 아파트 설계의 키워드는 무엇인가

“‘초연결’, ‘공간의 맞춤화·개인화’, ‘기술의 융복합’이다.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확대라는 변화에서 집도 예외일 수 없다. 예를 들어 현대건설의 스마트홈 시스템 ‘하이오티’는 최근 홈투카(home to car), 카투홈(car to home) 등 집에서 차량을 제어하고 차량에서도 집을 제어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인구 사회도 급속히 변하고 있다. 가치관, 직업형태, 가족형태 및 구성원 수, 근무형태 등이 다양해면서 획일적인 주거시설로는 다양한 입주민의 욕구에 대응할 수 없다. 그래서 공간의 맞춤화는 주요 이슈가 될 것이다. 또 한정된 공간을 다양하게 쓸 수 있도록 해주는 트렌스포밍 가구 등이 트렌드가 될 것으로 본다.

기술 융복합도 키워드다. 예전에 카메라는 광학적 기능 위주였으나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넘어와 각종 기능들과 합쳐지면서 시너지를 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융복합 기술을 지속적으로 적용하는 게 신상품 개발 방식이 된 것인데 집도 이런 특성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상품이다.

다양한 기술을 적용해 미세먼지와 바이러스 등 환경 이슈에 대응하고, 유지관리비가 적게 들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고, 친환경 소재를 적용하는 등 아파트의 상품 가치를 높이려는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질 것이다.”

서울 강남구 반포동 ‘디에이치 라클라스(옛 삼호가든맨션 3차)’ 단지에 걸어둔 현수막. / 현대건설

― 보람을 느꼈던 적이 있다면

“보람보다는 책임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오랜 시간과 노력을 축적해 집을 갖게 되지 않는가. 집은 바깥에서 쌓인 피로를 푸는 공간이자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편안한 보금자리이며 안식처가 되는 곳이기 때문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앞서 첫 입주를 맞은 ‘디에이치 반포 라클라스’ 현장을 갔는데 입주민들께서 아파트 단지 곳곳에 현대건설 임직원들에게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을 걸어주셨더라.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아파트 설계안을 제안할 때, 고객이 견본주택을 관람할 때, 입주민이 아파트 단지를 둘러볼 때 만족해 하는 모습을 보면 성취감과 함께 전율을 느낀다.

물론 항상 좋은 평만 듣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땐 어떻게 보완·개선해 나가야 할 지 고민하고 직원들과 발전 방향을 의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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