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진관] 과천 재건축의 마지막 퍼즐 ‘과천주공8∙9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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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진관’이 추억으로 남을 우리 동네의 지금을 기록해 드립니다.

14~15층으로 된 아파트와 5층 높이의 아파트. 이 둘은 엄연히 다른 단지지만, 두 단지를 하나의 정비구역으로 지정하며 재건축이란 한 배를 타게 되었다. 초기에는 갈등이 적지 않았지만, 통합 재건축을 진행해야 서로가 윈윈(win-win) 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2021년에 재건축정비사업 조합을 함께 설립한 과천주공8단지와 9단지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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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의 주공아파트 단지로 만들어졌던 과천 신도시

개인적인 이유로 과천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자료를 찾으면서 알아본 과천시는 수도권의 인구 분산 기능과 행정기능 중심의 친환경 주거 도시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 계획된 신도시다. 1978년 당시 정부는 제2정부청사가 지어질 곳을 과천으로 지목하여 주공아파트 단지와 함께 계획했다. 과천에는 1981년부터 첫 입주를 시작으로 1984년까지 12개의 주공아파트 단지가 빠르게 만들어졌다.

나무와 여유 부지가 많던 과천은 처음 신도시로 계획되었을 때와는 다르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2007년에 11단지를 시작으로 현재는 12단지 중 일곱 개의 단지가 재건축됐다. 과거 층수가 낮은 곳은 2층부터 아주 높아 봐야 15층까지였던 아파트들이 현재는 20층을 훌쩍 넘는 고층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 과천에서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단지는 4, 5, 8, 9, 10단지이다. 단지마다 진행 속도는 다르지만 특이하게도 두 단지가 함께 재건축사업을 진행하는 곳이 있다. 바로 주공 8단지와 9단지이다. 이 두 단지가 통합으로 재건축이 추진된 이유는 특이하게도 과거에 토지주택공사가 8, 9단지의 부림동 41번지 지분을 나누지 않은 영향이 크다고 한다. 과거에는 지분 문제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는 새로운 집에 대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조합설립인가 후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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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과천주공8단지

먼저 과천주공8단지를 둘러보았다. 8단지는 1983년도에 완공된 중층형 아파트다. 14~15층으로 된 총 12개동, 1,400세대로 구성되어 있다. 네모난 모양의 아파트가 모두 남동쪽을 일제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과천역 2번 출구로 나오면 8단지 정문이 바로 나온다. 8단지 정문 사이로는 빌딩들이 있는데 지하에 하나로마트가 있는 농협 건물은 재건축 지역에 포함되지 않아 먼저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 반대편에 있는 시대빌딩은 병원, 호프집, 태권도 학원 등 주민들 생활에 밀접한 다양한 근린생활 시설들이 모여 있는 건물로 8, 9단지와 같이 재건축하게 되었다.

가게들의 이름이 바뀐 것처럼 8단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 바뀐 것들이 있다. 남서울 상가 옆, 그리고 테니스장 옆에 있는 주차장들이 과거에는 풀숲이었는데 가구당 1대로 계획된 주차장이 있었지만 차가 많아지자 갓길에 주차하는 자리도 부족해 이중주차가 만연했다고 한다. 그나마 많은 식물이 자라고 있던 풀숲을 치우고 주차장을 만들어 주차 전쟁은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더 많은 주차 공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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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40세가 된 8단지는 새로 생기는 아파트와는 다르게 입구가 개방되어 있다. 입구 옆에는 주민들이 사용하는 자전거들이 놓여 있었다. 한 층마다 4개의 세대가 이용하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 보았다. 마침 날씨가 좋았는지 국립과천과학관과 저 멀리 롯데타워까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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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쳐 엎어놓은 듯, 박공지붕 모양의 과천주공9단지

8단지 위에서는 5층 아파트들로 지어진 주공 9단지도 내려다볼 수 있었다. 1982년도 12월에 입주를 시작한 9단지는 총 720세대로 이루어져 있다. 단지와 함께 자란 나무들은 오랜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어느덧 아파트 높이와 비슷해졌거나 일부는 더 커진 것들도 볼 수 있었다. 9단지 아파트들은 그 당시 주공아파트 로고와도 비슷한 박공지붕의 형태이다. 위에서 보니 책을 펼쳐서 엎어놓은 모양인 박공지붕을 경사 따라 정돈된 기와들과 함께 볼 수 있었다.

과천주공8∙9단지는 서쪽에는 양재천이, 동쪽에는 과천대로로 막혀있어 같은 도로 체계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두 단지는 겉으로는 차도로, 안으로는 인도로 연결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옆 단지로 넘어갈 수 있다. 8단지와 9단지의 경계선은 희미했지만 ‘과천8단지아파트’의 명패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과천주공9단지에서는 어디를 가도 굴뚝이 보인다. 지금은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중앙난방용 굴뚝으로 향해 가면 9단지 상가를 만날 수 있다. 기억상으로 5층으로 된 주공아파트들은 아파트 형태도 비슷했지만 2층으로 된 상가 모양도 비슷했다. 상가 2층에는 지붕에 구멍이 뚫려 있어 그 밑으로 중정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 모습이 9단지 상가에도 있다. 다만 상가마다 다르게 입점해 있는 가게들의 간판이 마치 색동저고리같이 그 상가만의 옷을 입혀주는 것처럼 개성을 더해준다.

과천주공9단지 상가 옆에는 언덕이 하나 있는데 계단을 넘어가면 작은 공원이 보인다. 주민들에게 ‘도토리 동산’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정자도 있고, 놀이터도 있고, 약수터도 있다. 지도에는 정식 명칭이 쓰여 있지 않지만 아마 주변에 도토리 나무가 많아서 이 곳을 좋아하는 주민들이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을까 싶다.

햇살이 나뭇잎을 타고 만들어낸 그림자가 아파트 입구를 가리키고 있다. 과천주공8단지는 모두 일정한 방향을 바라보며 서 있지만 과천주공9단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어 아파트 사이마다 다른 공간이 형성되어 있었다.

과천주공8단지 같이 동마다 일정한 간격을 두기 위해 비워 둔 공간이 있는 곳도, 놀이터를 사방 면으로 둘러싼 곳도 있다. 단지 가운데 위치한 놀이터는 어두운 밤에도 각 집에서 따스하게 새어 나오는 불빛 덕분에 어둡지 않아 아이들이 늦은 저녁까지 놀 수 있었을 것 같다.

과천주공8∙9단지 주변에는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들이 있다. 8단지 옆에는 관문초등학교와 부림동주민센터가 붙어 있으며, 근처에 과천도립도서관과 중앙공원, 관문체육공원도 있다. 서울대공원 또한 가깝게 있어 주민들이 한 시간 산책 코스로 많이들 다녀온다고 한다. 사는 곳 주변에 ‘대공원 가는 길’과 양재천 같이 잘 조성된 산책길이 있으면 삶의 질을 한층 올려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과천에는 정부과천청사가 계획되면서 주공아파트들이 함께 지어졌다. 그러나 정부과천청사 부처들은 대부분 이전되었고, 변해가는 흐름 속에서 과천주공8∙9단지도 다른 아파트 단지처럼 새로운 모습으로 뒤바뀔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까지 과천주공8∙9단지가 재건축 되기 전 답사를 다녀와 현재의 모습을 기록해보았다. 과천주공8단지와 9단지, 겉보기에 서로 명백히 달라 보이는 단지이지만 새로운 보금자리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똘똘 뭉쳐 남은 재건축 사업 과정의 마무리까지 한마음 한 뜻으로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