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진관] 변화의 결 위로, 더 빛날 내일을 기다리는 전주 전라중교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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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진관’이 추억으로 남을 우리 동네의 지금을 기록해 드립니다.

전주의 삼성동이라고 불리며, 한동안 멈춰 있던 재개발 사업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이 곳. 여기에 MICE 복합단지 개발이라는 외부 호재와 맞물려 한층 더 주목받고 있는 ‘전주 전라중교일원’을 기록해 보았다.


[1]

전주역에 내려 조용히 걸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높은 곳에 올라서니, 촘촘히 이어진 지붕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초록색과 파란색, 옥색과 갈색이 뒤섞인 풍경은 오래된 동네만이 가진 고유의 결을 드러내고 있었다. 건물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서도 저마다 다른 시간을 품고 있었고, 바삐 움직이는 도로 옆으로는 고요함이 흐르고 있었다. 겉으로는 복잡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일상이 담겨 있는 듯했다. 곧 바뀔 이 풍경을, 지금 이 순간의 모습으로 담아보고자 한다.

맑은 하늘 아래 골목을 따라 걸었다. 양옆으로는 낮은 건물들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었고, 전신주와 얽힌 전선들이 이 동네의 시간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오래된 철문과 색이 바랜 간판들은 제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길 위엔 사람과 차량이 무리 없이 어우러져 있었고, 그 느긋한 움직임 속에서 동네 전체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재개발 조합 설립을 알리는 문구였는데, 처음 보는 동네임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머물렀다. 필자 역시 다른 지역에서 재개발로 인해 터를 옮긴 경험이 있어서일까. 낯선 골목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고, 이제 곧 변화를 앞둔 이 풍경에 잠시 감정이 겹쳐졌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과 우리가 머무는 공간은 늘 크고 작은 변화를 겪으며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화려하게 정돈된 신축 단지와는 다른 분위기를 마주했다. 골목은 좁고, 건물들은 서로 맞닿을 듯 가까웠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벽 가까이에 놓인 화분이 보이고, 한참을 멈춰 선 듯한 차들이 길 가장자리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조금씩은 낡고 엉성해 보였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가까이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졌다. 이 동네는 멀리서 보는 풍경보다, 천천히 걷는 걸음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많은 동네를 다녀봤지만, 이곳처럼 다양한 집들이 한자리에 섞여 있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한옥 지붕 위로 빌라가 어깨를 맞대고, 좁은 골목마다 저마다 다른 세월이 얹혀 있는 듯했다. 건물 하나, 간판 하나에도 시간의 결이 느껴졌고, 유난히 오래된 미용실 간판마저도 이 동네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저 조용히 지나치는 길이었지만, 오래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곳저곳에서 새어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길가 너머로 넓게 열린 공영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 공간을 찾아 동네를 맴돌 필요 없이 차를 세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에 사는 일상이 한결 덜 복잡하게 느껴졌다. 주변에는 층수가 낮은 아파트들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고, 사람의 말소리보다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먼저 들려오는 거리엔 어딘가 평화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2]

이곳의 매력은 풍경 너머에도 있었다. 버스를 타면 전주역까지는 금세 닿고, 고속버스터미널도 천천히 걸으면 도착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어디론가 떠나기에도, 누군가를 맞이하기에도 편안한 거리.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병원과 건강관리센터 같은 시설들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일상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것들이 곳곳에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 이 동네를 조금 더 신뢰하게 만들었다.

골목을 조금만 벗어나면 초등학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운동장 한쪽엔 놀이터가 조용히 놓여 있었고, 알록달록한 건물 외벽엔 아이들의 목소리가 머무는 듯했다. 가까운 거리에 중·고등학교까지 고르게 자리하고 있어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안심이 될 만한 동네였다. 조금 더 걸으면 전북대학교와 전주대학교 캠퍼스가 이어지고, 그 주변엔 학생들을 위한 작은 가게들과 책방, 카페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있었다. 공부와 일상 사이의 균형이, 이곳에선 어렵지 않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철거 중인 전주종합경기장 부지 앞을 지나쳤다. 지금은 다소 쓸쓸한 모습이었지만, 높게 세워진 가림막엔 미래를 그려낸 조감도가 크게 걸려 있었다. 이곳은 곧 전주의 새로운 얼굴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글로벌 마이스 복합단지라는 이름으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 동네의 변화가 일상의 틀을 넘어 도시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한결 더 무겁고, 또 설레게 느껴졌다.

이 동네가 품은 자연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길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전주천이 흐르고, 그 물길을 따라 걷는 일은 하나의 산책이자 작은 쉼이었다. 멀지 않은 곳엔 덕진공원과 연화정도서관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계절마다 풍경이 달라지는 이곳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여백 같은 공간이었다. 머지않아 많은 것이 달라지겠지만, 그 변화의 시작점에 이렇게 조용히 스며든 하루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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